버냉키, 디플레 위험 직시, 양적완화 준비중?
머니투데이 뉴욕=강호병특파원]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RB) 의장이 28일(현지시간) 묘한 여운을 주는 발언을 했다. 실업문제는 "연준이 할 일이 많지 않다"면서도 디플레이션 위험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단호한 대처란 바로 돈을 더 찍어내는 양적완화다.
원론적인 얘기일수 있지만 최근 인플레 기대심리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양적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이날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이머징마켓으로부터의 교훈'이라는 주제의 연설 이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버냉키 의장은 "우리는 디플레이션을 원치 않는다"며 "인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연준이 대응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준이 기대 인플레이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한 뒤 "인플레 기대심리는 대체로 2% 인플레이션과 부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업문제에 관한 한 연준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버냉키 의장은 "현재 미국의 실업 상황은 국가적 위기"라고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버냉키 의장은 연설에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들은 연준의 정책영역 밖에 있다"는 말도 했다. 지난달 잭슨홀 컨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양적완화가 디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큰 조치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날 채권값이 소비자물가에 연동돼 조정되는 30년 만기 물가연동채권(TIPS)금리와 일반 국채 명목금리 차이로 측정되는 향후 30년간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1.85%로 내려갔다. 이는 지난달 2.73%에 비해 0.9%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올들어 최저치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지금부터 30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9%에 그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으로 이례적으로 낮은 기대수준이다.
디플레이션의 위험이 컸던 지난해 여름 수준보다는 높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가중되고 있어 안심할 형편은 못된다는 평가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가 없어 귀금속을 포함, 자산값이 일제히 내리고 달러가 강세로 가는 점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값은 최고 1923달러에서 1600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해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8월말 74수준에서 9월 하순 78수준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시행된 2단계 양적완화로 인해 주가, 귀금속, 유가 등 상품값이 일제히 상승세를 보이며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5년간 인플레이션 기대치 역시 지난주 1.63%에서 전날 1.31%로 떨어졌다. TD증권의 전략가인 리처드 길훌리는 "5년물 TIPS에서 주목해야 할 분기점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8월말 저점인 1.15%"라고 지적했다.
또 "만약 5년물 TIPS와 국채 수익률 차이가 1.15% 밑으로 축소된다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가 경제 성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으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