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는 시민 삶을 통제하는 새로운 수단”
근대사회가 태동하던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에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고유의 사회 갈등이 격렬한 계급봉기로 표출되던 19세기의 마르크스에게, 인간성은 그 '사회적 지위(계급)'를 따라 구성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호모 파베르(도구를 쓰는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 등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는 용어는 꽤나 다양하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 이른바 금융자본주의로 불리는 세계에서, 인간은 뭐라고 불려야 할까? 이탈리아 출신 철학자인 마우리치오 라차라토는 최근 출간한 책을 통해 '빌리는 인간(L'homme Endette)'이란 용어를 제안한다. 이름하여 '부채 인간'이다. 금융자본주의란 '금융'이 주도하는 경제체제인 만큼,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채권·채무 관계)가 전 사회적(전 세계적)으로 확장된다. 이에 따라 채권·채무 규모도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문제는, 모든 인간이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직간접 채무자로 포섭되고, 채무자라는 지위가 인간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라고 라차라토는 주장한다.
라차라토의 책 < 부채 인간의 공장 > (La Fabrique de L'homme Endette)은 다음 달쯤 국내에서도 번역·발간될 예정이다. 출간을 앞두고 프랑스 파리의 라차라토에게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마우리치오 라차라토(사진)는 부채를 삶의 문제로 확장시켰다. |
부채(채무)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채 인간'이라는 당신의 철학적 규정은 매우 낯설다. 부채가 경제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나.
미국에서 한 학생이 석사 학위를 마치려면 최대 7만5000~10만 달러의 채무를 져야 한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규모가 1000억 달러라고 들었다. 학생들이 취업, 즉 노동시장에 진입하기도 전에 거액의 부채를 짊어져야 하는 거다. 이는 역대 정부가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교육 보조금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교에 다니려면 개인이 돈을 빌려야 한다.
일단 학자금 대출로 공부를 마친 학생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부채 상환, 즉 '부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가 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돈을 빌릴 때 작성한 계약서대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행위와 선택을 '자유롭게' 제한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갚을 것인가'가 취업과 소비, 나아가 삶의 스타일 전체를 스스로 옥죄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시민의 삶을 통제하는 새로운 수단이기도 하다. 인간들은 법률적·강제적 억압이 아니라도 빚을 갚기 위해 '자율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통제하게 되니까. 체제는 우리에게 "당신은 자유롭다. 부채를 갚기 위해 일하고 생활할 자유가 있잖아"라고 속삭이는 거다.
그런데 이런 운명은 미국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실제적 운명이다.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 '부채를 짊어지는' 경우도 있다. 유럽 시민이 그렇다. 이들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쌓아놓은 부채를 갚아주기 위해 세금을 내고 있지 않은가(편집자:여기서 부채란 EU와 회원국들이 금융기관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제공하는 공적자금을 의미한다). 금융위기에 정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는 은행 등의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의 부채를 일반 납세자들이 갚아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부채 인간'을 만든 것은 사회보장제도의 후퇴란 이야기인가. 영국에서도 정부가 학비 지원을 중단하고 등록금이 크게 오르면서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불거진 바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칠레 학생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어왔다. 이들의 첫 번째 의제가 바로 '부채에 대항한 투쟁'이다. 칠레는 피노체트의 쿠데타(편집자:1973년 사민주의 성향의 아옌데 정부를 군사 반란으로 전복하고 집권한 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추진) 이후 미국 시카고학파의 통화주의자들을 불러와 경제구조를 새로 짰다. 그중 하나가 학생들이 스스로 돈을 빌려 학자금을 조달하게 만드는 개혁이었는데, 칠레는 이 정책을 추진한 첫 번째 국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보장제도를 후퇴시키면서, 그 대신 시민들이 돈을 빌려 각자 알아서 자기 삶을 해결하도록 했다. 부채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이는 현재 세계 경제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시장주의자들은 인간을 자유롭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이런 존재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상품이든 노동력이든)을 서로 '교환'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공간이 바로 시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시장엔 삶을 옥죄는 부채도 없고, 억압도 없지 않은가.
통화(돈, 화폐)가 뭔지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신고전학파(시장주의) 경제학자들에게 통화는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통화의 창출 자체가 부채에 기반한 것이다(편집자:예컨대 화폐는 국가의 부채로 간주된다. 또한 은행은 예금(은행의 부채)을 대출함으로써 통화를 창출한다).
더욱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끝없이 통화를 창출해야 작동될 수 있는 '통화 경제'다. 통화를 통제하
라차라토가 최근 출간한 < 부채 인간의 공장> . |
는 것은 사실상 경제 전체와 그 발전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통화가 부채에 기반하고 있다면, 부채는 자본주의 경제의 본모습인 것이다. '부채 인간'은 이런 '부채 경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존재 양상이다. 부채가 있으면,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권력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율적인 교환'이 아니라 채권-채무라는 권력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엄청난 돈이 채무자(대다수의 민중)로부터 채권자(은행, 연기금, 기업, 최고 부유층)에게 흘러 들어간다.
당신은 부채가 공공 영역까지 잠식했다고 주장해왔는데.
금융위기가 터지면 국가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시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다)을 만들어 금융권에 쏟아붓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이런 국가 개입이 없었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벌써 무너졌을 거다. 그런데 국가가 금융권을 지원하고 나면 엄청난 규모의 공적 부채가 발생하지 않나. 국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사회 지출을 극단적으로 삭감하고 세금을 올려 시민에게 돈을 걷는다. 결국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의 시민들이 국가부채(공적자금으로 인한)를 상환하게 된다. 유럽연합(EU)의 시민들은, 이 국가부채 때문에 수천억 유로의 빚을 지고 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은행과 대출 계약을 한 적 없는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부채는 공적(국가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EU도 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이에 대한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EU에서는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엄청나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개혁' 방안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복지 지출을 더 줄이는 것뿐이다. EU 수뇌부는 국가부채 해결을 빌미로 어떤 사회적 희생(심지어 경제 불황까지)을 치르더라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려 한다. 금융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금융기관들만이 아무런 손실을 보지 않고 있다. 이 금융기관들은 호황기의 '이윤은 사유화'해왔지만, 불황기의 '손실은 사회화'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이런 '개혁' 정책으로 국가채무를 줄이겠다며 시민의 운명을 '돈 빌려주는 자', 즉 금융기업과 부자들 손에 밀어넣고 있다.
결국 EU식의 정책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
국가부채는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복지국가의 파괴, 금융 주도 경제, 불평등 심화 등이 과다한 국가부채로 귀결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EU의 정책은 (국가부채의 진정한 원인인)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고, 따라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인터뷰 번역·허경(고려대 연구교수)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21003125509651
화폐와 교환되는 화폐는, 화폐의 본성과 모순된다.
- 칼 맑스 -
자연에 입각하지 않고 상호적 사취에 입각하고 있는 고리대는 증오를
받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화폐 자체가 이득의 원천이 되어
그것이 발명된 취지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는 상품교환을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자는 화폐 자체를 보다 많은 화폐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영리부문 가운데 이것이 가장 반자연적인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