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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엔하위키] 대한민국의 재벌

뉴 턴 2012. 11. 10. 10:55

 

Contents

1 본문
2 재벌 리스트
2.1 4대 재벌
2.1.1 범 삼성그룹 계열
2.1.2 범 현대그룹 계열
2.1.3 범 LG그룹 계열
2.1.4 범 SK그룹 계열
2.2 상위 기업집단
2.3 기타 기업집단
2.4 흑역사가 된 재벌


 

1 본문

이 항목에 예시된 그룹중 재벌이 아닌 기업이 많이 포함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각 그룹의 지배구조를 잘 아시는분의 수정/추가바랍니다.

2 재벌 리스트

2.1 4대 재벌

관련 계열사는 해당 그룹 링크를 참조하도록 하자.

2.1.1 범 삼성그룹 계열

2.1.2 범 현대그룹 계열

2.1.3 범 LG그룹 계열

LG그룹은 원래 구씨(구인회)와 허씨(허자경)의 동업으로 시작한 그룹이다.

2.1.4 범 SK그룹 계열

2.2 상위 기업집단

정부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이 제한되는 기업집단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2011년 현재 55개가 지정되었으며, 아래는 자산총액 순서이다(공기업 제외).

2.3 기타 기업집단

잘 알려지거나 주력인 사업을 그룹명 옆에 표기하였지만, 당연하게도 각 그룹은 이보다 더 많은 사업을 다양한 분야에서 벌이고 있다.

2.4 흑역사가 된 재벌

  • 국제그룹: 1980년대 초반까지 재계 6위의 재벌이었으나, 전두환에게 찍히고서 1985년 2월 전면 해체.
  • 기아그룹: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3대 자동차 재벌[1]이었으나, 경영 악화로 1998년 4월 전면 해체.
  • 대우그룹: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3대 재벌[2]이었으나, 외환위기의 타격 이후 1999년 11월 전면 해체.
  • 명성그룹: 국내 관광 및 레저 산업의 선구자[3]격인 재벌이었으나, 전두환에게 찍히고서 1983년 7월 전격 해체.[4]
  • 율산그룹 : 3년 만에 흥하여 3년 만에 망한 재벌. 망한 뒤 센트럴 시티로 재기했으나 통일교에 인수되어 잘먹고 잘살고 있...나?
  • 한보그룹: 1980년대 강남 개발[5]로 급성장한 재벌, 무리한 확장을 벌이다 결국 1997년 1월 부도 처리.[6]
  • 해태그룹: 1990년대 중반까지 제과 및 음료 관련 재벌이었다. 1997년 11월 부도 후 이듬해 전면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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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대우, 기아로 일컬어진다.
[2] 현대, 삼성, 대우로 일컬어진다.
[3]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은 관광,레저 분야의 귀재로 불릴 정도로 그 옛날에도 혁신적인 레저 사업안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전도 유망한 사업가였다. 현재 국내 관광 레저 산업의 보편적 형태로 정착된 콘도는 바로 명성그룹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만약 김철호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명성그룹이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면, 국내 관광 및 레저 산업이 현재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을 거란 의견도 있을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4] 당시에 전두환의 장인 이규동으로 부터 골프장 부지 고가 매입과 관련한 청탁을 받았으나 낮은 사업성을 사유로 거절했고, 5공 핵심인사가 정치자금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파토가 나면서 전두환에게 찍혀버렸다. 이를 빌미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김철호 회장을 죽여버리고자 2차에 걸친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실시 했는데, 김철호 회장이 난 억울하다며 국세청의 부당한 세무조사에 공식항의하는 문건을 4대 일간지 1면 광고로 실으면서 전두환 정권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셈이 되었다. 세무조사로 이미 금융권에서의 자금줄이 끊겨 고민하던 김철호 회장은 궁여지책으로 은행 돈을 가지고 지 멋대로 불법 사채놀이를 하던 간큰 또라이 은행직원한테서 자금을 공급받았는데, 이게 세무조사에서 걸려드는 바람에 김 회장은 또라이 은행직원과 작당했다고 뒤집어 씌워 징역 15년형을 받는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건실한 기업체였던 명성그룹 계열사들은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부도가 나지 않았고, 결국 5공 정권이 명성그룹 경영진들을 압박하여 어거지로 부도처리 시키고 계열사들을 전부 헐값에 한화그룹으로 매각시킨다. 현재 한화그룹의 콘도를 비롯한 레저 사업 부문 계열사들은 그 근원이 바로 명성그룹이다.
[5]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회장이 1973년에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기업으로, 1976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통틀어 최대인 4400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를 건설 및 분양하여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날리고 이후 강남 및 서초 지역에 자체브랜드인 미도아파트 분양 사업까지 성공하며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재벌로 급성장하였다. 그만큼 정태수 회장이 은마아파트 부지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애착이 컸는지 부도 직전까지 한보그룹 본사를 은마아파트 상가 건물에 두고 있었다.
[6] 사업성이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시베리아 유전개발 사업 및 철강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결정적 화근이 되었다. 채권단이 경영권 포기 절차등으로 제3자 인수로 회생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정태수 회장이 거부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부도 처리로 귀결되었다. 부도 당시 부채규모가 당시 액수로 4조 2천억원씩이나 되었으나, 자기자본규모는 고작 900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은행 차입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는 재벌들의 기존 관행과 더불어, 은행들 또한 대출 검토시에 제대로 신용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외형 및 실적 위주로 평가한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구조조정 후 해외로 매각되는 안습의 수순을 밟았으며, 더불어 한보그룹 부도사태는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의 전주곡이 되었을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 및 OECD 가입 등 우등생으로 승승장구하던 대한민국의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neostrik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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