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목사 인터뷰 사건

조웅 목사의 오판 박정희는 황태성을 만나지 않았다.

뉴 턴 2013. 2. 24. 17:46

조웅 목사의 오판 박정희는 황태성을 만나지 않았다.

조웅 목사의 폭로 동영상이 공개되어 화제다.

18일 온라인 동영상 채널 유투브에는 조웅 목사 인터뷰 영상이 게재돼 포털 실시간 이슈 검색어로 오르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해당 영상에서 조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확인되지 않은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나열하였다. 그는 앞서 올라온 영상에서 스스로를 "5.16 군사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5.16 군사정변 이후 ‘황태성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김종필 등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후 그는 1980년 이후로 종교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인터넷신문 <뉴스몬>은 진위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제를 달면서 조웅 목사의 인터뷰 내용 중 황태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황태성은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친구이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대구 폭동이 실패하자 월북하였다가, 다시 밀사의 임무를 띄고 남한으로 내려와 박정희를 만났다.

조 목사는 박정희와 황태성의 관계를 파악하고 미군에게 황태성이 박정희의 정치적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중앙정보부에 잡혀 징역살이를 하게 되고 출소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중요한 사실은 박정희는 당시 정치상황상 황태성을 만날 수도 만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5.16 쿠테타가 성공한 후 박정희는 미국 정부와 우리 국민들로부터 "좌익경력"으로 인정을 못 받았다. 그는 남로당 군부 총책으로 특무대 김창용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사형 일보직전까지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격을 존중했던 군 동료, 선배의 구명운동과 남로당 군 계보를 제보한 댓가로 석방되어 현직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남로당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의심을 받았다.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다" 라는 야당의 공세에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혁명 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윤보선 후보 진영의 사상논쟁을 통한 공격에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시에 박정희는 비롯 군인이었지만 지사적 지식을 겸비한 군인이었던 것이다. 당시 남한 의 지사적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듯이 그도 한때는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386세대였던 것이다.

쿠테타 성공후 박정희를 만나겠나고 온 북의 인사가 있었다. 그는 박정희 형 고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이었다.

골수 공산주의자라 6.25가 끝난 후 북으로 도망간 자였다. 그는 박정희가 최고 권력자가 되자 그의 사상적 기반을 검증하러 내려 온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도 그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북에서도 거물이요, 또한 장인의 절친한 친구였으니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박정희에게 면담여부를 타진했다. 그러난 박정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바로 그를 간첩협의로 구속시켜 사형시켜 버렸다. 

박정희는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형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을 처형해 반공주의자로 국민들로 재신임을 받았다.

물론, 박정희를 비판하는 남한내 좌파들은 황태성의 처형을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출처 :http://www.wbctimes.com/sub_read.html?uid=57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