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사지로 내모는 '취업률의 덫'
시사INLive 전혜원 기자 입력 2014.03.10 09:26 수정 2014.03.10 11:26마이스터고는 '젊은 장인을 양성하는 특목고'를 지향한다. '신 고졸시대' 구호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는 실업고 등 기존 전문계고 일부를 산학협력형 특성화고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전문계고 가운데 심사를 거쳐 지정한 마이스터고 21개교가 처음 문을 열었다. 2014년 2월 현재 전국에 39개 마이스터 고교가 있는데, 마이스터고로 지정되면 학비와 기숙사 건립비를 비롯한 예산 전액을 교과부나 교육청에서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90%대 취업률을 자랑하는 마이스터고 선정 기준에 현장실습 사업체의 노동조건이나 철저한 관리감독 여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 숨진 두 명의 현장실습생도 마이스터고 학생이었다(고 김대환군이 다녔던 현대공고는 지난해 말 마이스터고로 지정되어 2015년 3월 개교한다). 현장실습 운영 면에서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엘리베이터를 정비하던 현장실습생이 추락사한 이듬해인 2006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장실습 운영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장실습은 졸업 후 해당 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에 한해 허용하고, 간접고용 형태로 파견 현장실습을 실시하는 것은 금지하겠다는 방안이었다. 현장실습 시기를 3학년 2학기 교육과정 3분의 2 이상을 이수한 경우에만 가능하게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합뉴스 마이스터고인 경남 거제시 거제공고에서 한 학생이 용접을 배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정책으로 빗장 풀려
이 정상화 방안은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계획으로 폐지됐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즉시 혁파하겠다'고 나섰다. 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 역시 '즉시폐지 지침' 29건에 포함됐다. 현장실습생에 관한 모든 규제의 빗장이 풀린 상황에서 2011년 12월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주 70시간 이상 일했던 현장실습생 김민재군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2012년 4월 정부는 부랴부랴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현재와 같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는 바로 이 대책의 일환이었다. 정부는 또 현장실습생이 취업과 연계되어 사실상 근로에 종사하는 경우 실습협약과 동시에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보통 표준협약서와 근로계약서를 같이 체결하는데, 이때 기업체가 표준협약서를 형식상으로만 작성하는 대신 근로계약서에 '회사 사정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 따위 단서 조항을 달아 표준협약서상의 내용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대한민국 중소기업 가운데 하루 7시간 근무를 지키는 업체는 없다"라고 단언할 정도다. 실제로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지난해 2월 현장실습 참여 경험이 있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3학년 학생 10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시간 이상 연장실습을 했다고 답한 학생이 55.2%에 달했고, 휴일실습(53.3%)과 야간실습(25.5%)을 경험한 비중도 높았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학교가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들을 보내는 것은 취업률 압박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25%→2012년 37%→2013년 60%를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로 제시했다(2009년 당시 전문계고 취업률은 16%대까지 떨어져 있었다). 취업 기능이 미약하거나 일정 규모 이하인 특성화고와 종합고(인문계와 전문계가 같이 있는 학교)에 통폐합 권고를 하고, 취업률에 따라 차등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책도 발표했다. 특히 2010년 개교한 마이스터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고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선점하면서 기존 특성화고의 취업률 압박은 더 심해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성과에 따라 5년마다 재지정되는 마이스터고 역시 취업률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모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지방의 한 공업고교 원 아무개 교사는 "취업률이 학교 평가의 척도가 되고 그에 따라 예산이 좌우되니 아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아이를 취업시켜달라고 부탁하는 처지에서는 기업에 이런저런 요구를 할 여건이 안 된다. 교장이 담임을 불러다 놓고 취업률로 압박을 주기도 한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교조 실업위원회 하인호 교사(인천여상)도 "학교는 보내지 말아야 할 회사라는 걸 뻔히 알지만, 자신들이 안 보내면 다른 학교가 보내니까 먼저 보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0년 3월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전국 21개 마이스터고 학생 대표들과 악수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고 김동준군이 받아들었던 '각서'처럼 표준협약서나 근로계약서 외에 별도의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나온다. 현장실습 파견 전 학교·회사·학부모 3자가 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학교에서 자체 양식을 준비하거나 회사가 준비한 양식 등으로 각종 서약서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노무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장실습을 하다 조건이 생각하는 거랑 달라 중간에 그만둘 경우 나머지 실습비를 못 받는 부분에 대해 문제 삼지 말라거나, 실수로 기물을 부수거나 손해를 입힐 경우 전액 혹은 몇 배 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하고 거기에 부모 사인까지 강요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서약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섣불리 얘기했다가는 학교에 누가 될 것 같고, 본인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위축된다. 일종의 협박이다."
현장실습과 취업, 엄격히 구분해야
계약 단계뿐 아니라 근로감독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2012년 대책에서 정부는 학교와 기업 현장에서 현장실습 기업 선별, 학생 근로조건 모니터링 등을 지원하겠다며 교과부에서 산업체 현장 경력 강사 650명과 취업지원관 350명을 파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취업지원 교사는 학교당 1~2명이고 그나마도 없으면 담임교사가 겸임하는 식이다. 최수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보통 한 기업에 아이들이 1.5명 정도 파견된다. 고3 취업지도부장이 아이들이 파견된 300개 기업을 모두 관리하기란 애초부터 무리다. 교사들 출장비조차 제대로 책정이 안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기업이 학교의 간섭을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전화 등으로 우회해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계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근로감독 강화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장실습과 취업을 엄격히 구분하고, 학생인지 노동자인지 법적인 신분을 분명히 해야 하며, 교육의 의미를 살리는 현장실습을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인호 교사는 "엘리베이터는 이렇게 정비하는 것이고, 이 일을 하려면 이런 걸 준비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방식이었다면, 학생이 일을 하다 추락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원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해 현장실습생을 위험하고 고된 노동에 투입하는 행태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노·사·정 합의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현장실습 모델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31009261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