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와대 '제3의 인물이 보고서 유출' 파악하고도 묵살 의혹
한겨레 입력 2014.12.02 08:20 수정 2014.12.03 01:50
[한겨레]보고서 유출 경위 논란
청와대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정윤회 동향 보고' 문건 유출자를 이미 파악하고도 검찰 수사를 의뢰한 정황이 드러났다. 1일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세계일보> 보도로 '정윤회 국정개입 논란'이 불거진 지난 28일, 문건 유출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도 내부 조사 내용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검찰에 유출 경로를 조사해 달라고 수사 의뢰한 것은 사건을 '비선 국정개입'이 아닌 '문건 유출' 구도로 돌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는 대목이다.
5월초 자체조사 결과
제3의 인물 확인하고도
박 경정 지목해 수사 의뢰
'문건 유출' 초점 전환 의혹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 4월 초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각종 감찰·동향보고서가 유출된 사실을 파악하고 유출자로 문건 작성자인 박아무개 경정을 의심했으나 5월 초 자체 조사에서 박 경정이 아닌 제3의 인물이 문건 유출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정수석실은 이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묵살됐고, 이 과정에서 '비선 실세'로 언급된 비서관이 "이미 다 정리된 사안을 굳이 재론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지난 28일 해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과 기자들을 고소하면서 '(문건을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박 경정을 지목한 셈이다. 지난 29일 <조선일보>도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해 청와대를 나온 박 경정이 자신이 발령날 것으로 예상한 서울경찰청 정보분석실에 문건이 담긴 라면상자 두 박스 분량을 가져와 보관했다가, 다른 사무실 직원들이 이 문건을 복사하면서 유출됐다는 식으로 보도해 박 경정에 대한 청와대의 수사 의뢰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청와대 근무 경험자들에 의해 즉각 부인됐다. 출퇴근 보안검색이 철저하고 이동식저장장치(USB)나 사적 이메일까지 점검하는 청와대 시스템을 고려할 때, 매일 한두 장씩 들고 나오는 건 몰라도 상자째 문서를 반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박 경정도 문건 유출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3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2월 초 박스를 정보분실에 갖다 놓은 건 사실이지만, 청와대 파견 전 경찰청에 근무할 때 사용하던 개인 물품과 서류"라고 해명했다. 박 경정은 <한국일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선 "경찰 복귀 직전 누군가 내 서랍에 있던 서류들을 복사한 것으로 안다. 청와대도 내가 유출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다"라고 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는 제3의 인물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비어 있는 틈을 타 문건을 복사한 뒤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수사관에게 넘겼고, 이 문건이 경찰 정보관을 거쳐 언론에 빠져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와대가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도, 박 경정을 사실상의 유출자로 지목하는 것처럼 수사 의뢰를 한 것은 청와대가 유출 관련 조사 내용을 검찰에 밝히지 않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이세영 기자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