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은 아시아계가 불편한가
시사저널 김회권 기자 입력 2015.01.13 18:38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합격했는지 여부를 통지받을 때가 오면 미국의 고등학교 12학년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다. 동시에 이 시기는 미국의 대학 입학 시스템이 공정한가를 두고 매년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도마에 자주 오르는 메뉴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이다. '공정한 입학사정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SFFA)'이라는 단체가 있다. 11월17일 SFFA는 하버드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유는 이랬다. "이들 대학이 펼치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인종 균형을 위해 오히려 아시아계 학생들을 차별하는 것이며 인종 중립적인 입학사정 방식을 요구한 대법원 판결과도 어긋난다."
아시아계에만 유독 좁은 명문대 문턱
SFFA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성적이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다. 이것은 과거 유대인 입학 논란 때와 비슷하다. 우리네 입시제도에서도 도입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유대인 입학을 제한하기 위해 나온 결과물이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대학들은 학업 능력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했는데 그러다 보니 '유대인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이민자 중 유독 교육열이 높은 유대인은 하버드에서도 늘어났는데, 1900년 7%가량이던 유대계 입학생은 1922년 21.5%까지 급증했다. 그러자 대학들은 학업 능력으로만 학생을 뽑을 경우 신입생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하버드에서는 유대인 15% 상한선을 도입하려고 했고 학업 능력만을 보지 않고 '인성과 리더십' 등 다른 기준 등을 입학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것이 입학사정관제의 시작이었다.
100년 전 유대인 입학에서 문제가 됐던 것이 오늘날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게 SFFA가 소송을 한 이유다. 하버드 대학의 2014년 신입생은 1667명이다. 인종으로 따져보면 흑인 12%, 히스패닉 13%, 원주민 2%, 아시아계 20%다. 인구가 5% 남짓한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와 비교해보면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은 없는 듯이 보이는 숫자다.
그러나 아시아계 학생들은 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및 고등학교 성적이 월등히 좋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하면 오해를 낳기 쉽다. 프린스턴 대학 사회학자인 토머스 J. 에스펜셰이드와 알렉산드리아 왈튼 래드포드는 2009년 미국 명문대에 입학신청서를 제출한 9000명 이상의 학생들을 조사했는데, 성적과 시험 점수가 같았을 때 백인 학생들은 아시아계 학생들에 비해 입학 허가를 받는 비율이 3배나 높았다. 에스펜셰이드는 "아시아계 지원자에 비해 백인은 3배, 히스패닉은 6배, 흑인은 15배나 미국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인종은 미국 고등교육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미국의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인종은 원래 고등교육의 폐쇄성을 부각시키는 요소였다. 특히 아이비리그로 알려진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 그룹은 원래부터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 문화가 강했는데 비단 유색 인종의 입학 문제로만 떠들썩했던 게 아니다. 개신교가 아닌 백인의 입학 문제, 가톨릭 여성의 입학 문제 등에서도 보수적인 의견이 돌출했던 게 이곳의 역사다.
여전히 미국 각지에서 눈에 보이는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에게 균등한 고용 기회를 주기 위해 처음으로 '차별 철폐 조치'라는 말을 사용했다.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모든 인종이 평등한 국가라는 점을 알리게 된다. 이때부터 소수인종에게 고등교육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각 대학에 일정한 인종적 입학 프레임이 마련된다. 이른바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이 인종적 프레임이 생기면서 성적 우수자가 많은 인종의 경우 다른 인종이었다면 합격할 수 있는 점수인데도 불합격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8년 동안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아시아계 학생 비율은 17.6~20.7%였다. 미국 인구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크게 증가하고 있는 인종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2000~10년 사이 인구 증가율이 43.3%에 달했다. 그래도 하버드 대학의 아시아계 비율은 20년 이상 변하지 않고 있다. 우수한 성적과 높은 SAT 점수를 가진 아시아계 지원자는 과거 20년 동안 2배로 늘어났지만 입학이 허가된 학생의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하버드와 달리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적용하지 않는 칼텍의 경우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2013년 하버드 입학생 중 아시아계는 18%였지만 칼텍은 42.5%에 달했다.
SFFA는 이런 숫자들이 하버드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인종에 교육 기회를 보장해준다는 선의는 사라졌고, 오히려 원하는 인종 비율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몇몇 연구들과 통계들은 하버드 대학의 아시아계 역차별을 입증할 만한 자료로 이번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됐다.
야샤 멍크 '새로운 미국 재단' 연구원은 "보수주의자들이 하버드 대학이 아프리카계나 히스패닉계 입학을 우선시하면서도 동문 자녀(전체 재학생의 12%)나 운동 특기생(13%) 비율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필요하지만, 적어도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25%의 동문 자녀 및 운동 특기생 비율만 조정해도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멍크 연구원은 하버드 대학의 속내를 이렇게 해석한다. "실력을 중시할 경우 백인이 소수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을 하버드가 편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113183806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