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가 된 고용노동부 출신 대학학장 김세곤씨 "판사도 해고노동자가 된다면..노동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
경향신문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입력 2015.07.13. 14:20 수정 2015.07.13. 14:26
“노동부 출신이 노동부에 비수들 댄 격이니 노동위원회에서는 이기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문제는 노동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노동위원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법원의 판사들까지 노동법의 기본을 무시한 채 판결을 하는걸 보고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김세곤 전 한국폴리텍 강릉캠퍼스 학장(62·행시 27회)은 13일 “해고노동자 신세가 되보니 노동부에 있을 때 미처 몰랐던 게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회한을 밝혔다. 전남지방노동위원장을 끝으로 고용노동부에서 25년의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2011년 9월 임기 3년의 강릉대학장에 임명됐으나 1년10개월 만에 면직됐다. 임명될 때 60세가 되던 날 그만두기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한국폴리텍에서는 임용장을 주면서 ‘정년이 60세고 임기 중에 정년이 되니, 60세가 되는 날짜로 사직서를 써야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6개월 후에 알고 보니 60세가 넘어서 임명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정년이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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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방노동위원장을 끝으로 고용노동부에서 25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1년 폴리텍 대학 강릉대학장에 임명된 김세곤 전 학장). 김 학장은 임기 3년을 마치지 못하고 1년10개월만에 면직된뒤 부당해고 노동자가 되어 해고무효소송을 벌이고 있다. 서울지노위, 중노위를 거쳐 행정소송 1,2,3심과 민사소송 1심까지 6전6패를 기록 중이다. 김 전학장은 “해고노동자가 되서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다녀보니 노동부에 있을때 몰랐던게 많이 보인다”며 회한을 밝혔다. 김정근 기자 |
김 전 학장은 정년을 60세로 믿게 해서 사직서를 미리 제출받은 것은 노동법을 무력화시키는 노동계약이라고 판단하고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전직 지방노동위원장이 해고노동자가 되어 친정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부처도 아니고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노동법을 위반한 사안입니다. 심문회의에서 폴리텍은 ‘60세 이전에 임명되면 60세에 그만둬야하고 60세 넘어서 임명되면 임기 3년을 다 채울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차별적 정년 관행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공익위원들은 ‘60세까지 해먹었으면 되지 창피하게 여기까지 왔냐’는 식이에요. 공익위원중 한 분은 ‘노동부 출신끼리 집안싸움하다 신문에 나면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처음부터 제대로 심문할 생각은 없었던 거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서울지노위는 ‘지역대학장은 노동자로 볼 수 없어 부당해고 구제신청 자격이 없다’며 각하결정을 내렸다.
“뻔 하죠. 노동부 눈치 봐야 하는 공익위원들이 (노동부가)잘못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지역대학장은 노동자가 아니다’고 각하 해버리면 나머지는 판단안하고 다 빠져나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앞서 순천 지역대학장 부당징계사건에서 중노위가 이미 ‘지역대학장은 노동자’라고 결론을 내렸거든요. ‘결정례가 있으니 검색해보라’고 계속 강조했는데 조사관이 보고서에도 적지 않고 다 깔아뭉갠거죠”
그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뒤늦게 노동자성은 인정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국폴리텍측이 지노위때 주장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듯 중노위에서는 ‘원래 모든 지역대학장의 정년이 60세’라고 심문회의에서 말을 바꿨고 공익위원들은 사용자 손을 들어줬다.
“공익위원이 폴리텍 이사에게 ‘지역대학장은 정년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1급 상당 직원으로 간주해 정년이 60세’라고 하는 거에요. ‘그럼 60세가 넘어 임명된 사람은 뭐냐’고 하니까 ‘특별한 공로가 있는 분’이라고 하는 거에요. ‘정년이 60세라면 처음부터 60세에 맞춰 임명장을주면 되지 왜 미리 사직서를 받았느냐’고 하니 ‘대외적으로 임기 3년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고 답변합니다. 워낙 상식 밖의 주장을 하니까 공익위원도 짜증을 냈는데 결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이긴 겁니다”
노동위원회에서 1,2심 모두 패배한 김 전 학장은 결국 법원에서 친정을 상대로 다시 기나긴 법정싸움에 돌입했다.
“판사들은 노동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법원으로 가면‘말도 안 되는 관행이 바로잡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죠. 하지만 기대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행정소송이 시작되고 나서 폴리텍은 지역대학장의 정년에 대해 다시 말을 바꿨다. 지역대학장 경우 ‘60세 정년적용자’(1유형)와 ‘60세 이후에도 근무할 수 있는 자’(2유형)로 나눠 정년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취업규칙에는 정년에 대해 폴리텍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폴리텍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취업규칙상 정년 규정과 관계없이 공무원출신의 경우(1유형) 60세까지만 근무하도록 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더 나가 ‘원고는 사직서 제출을 통해 60세에 그만두게 하는 관행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노동법 원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절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정년이 60세로 알고 있었을 뿐에요. 취업규칙에 정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직서를 쓸 이유가 없지요. 더구나 사직서를 제출 받아 60세에 그만두도록 하는 것은 위법한 관행이거든요. 그런데 판사는 폴리텍 측이 취업규칙에도 명시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정년을 두 가지 유형으로 운영하면서 공무원 출신한테만 차별적으로 60세 정년을 적용한 위법한 관행을 인정한거에요.”
재판과정에서 사직서에 적힌 사직일(2013년 6월30일)보다 5일 먼저 사표가 수리된 부분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판사가 재판하면서 혼잣말로 ‘사직일이 6월30일인데 6월25일로 사표가 수리돼도 괜찮나’하더니 정작 판결문에는 6월30일 날 면직통보를 했다고 기재를 했어요. 판사가 문제 소지를 알면서 사실관계를 사용자에 유리하게 왜곡한 거죠”
김 전 학장은 임기 3년을 한 달 반 정도 앞둔 지난해 7월18일 항소하면서 대전지법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제실익이 문제가 되었다. 판사는 선고날짜를 한 차례 연기한 후 임기 3년 만료시점으로 부터 한 달쯤 지난 지난해 10월30일 각하결정을 내렸다.
행정소송 중 계약기간이 지나면 부당해고 주장은 무조건 각하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설움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다만 KBS 정연주 사장 사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법원은 2012년 정 전 사장 사건에서 ‘임기만료로 지위를 회복할 수 없더라도 보수 지급을 구할 수 있는 경우 구제실익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김 전 학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도 계약기간이 지나도 부당해고 기간 중 임금을 받을 실익이 있는 만큼 공공기관 경영자와 비교해 재판받을 권리에서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상고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렸다. 상고이유를 들여다볼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심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 2심을 뒤짚고 사용자 편을 들어준 박보영 대법관이었다.
결국 임기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그가 부당해고를 다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사소송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또다시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취업규칙에 정년조항이 없으면 정년에 제한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무시됐고, 사직서를 제출받아 60세에 그만두게 한 사례는 저 앞에 딱 1차례만 있었는데도 ‘관행이 있었다’고 한 것이어요. 앞서 엉터리 대전지방법원 판결을 고민 없이 그대로 인용한 거죠”
그는 “취업규칙에 정년이 없어도 관행으로 미리 사직서를 제출받아 60세에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노동부가 구태여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을 완화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고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노동법과 정의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있다.
“판사나 공익위원들도 저처럼 해고노동자 입장이 되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최소한 노동법이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이라는 점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newsview?newsid=20150713142126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