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수당 지켜주세요".. 청년단체들,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경향신문 김향미 기자 입력 2016.01.22. 16:39 수정 2016.01.22. 16:57
[경향신문] 서울 청년단체들이 22일 오후 1시쯤 대법원 종합민원실을 찾아 보건복지부가 제소한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해 청년 당사자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했던 서울청년네크워크(청정넷) 및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은 이날 보건복지부의 소송취하와 대법원의 소송 기각을 요구하는 청년 317명의 서명을 받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서울시의 청년수당을 사회보장제도라고 해석,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올해 예산을 편성했다는 의유로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대법원에 예산의결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예산 집행정지결정을 신청했다. 청년단체들은 의견서에서 “청년수당은 청년 당사자들의 삶과 목소리로부터 탄생한 정책”이라며 “사회로 나서는 긴 시간을 홀로 버티고 있는 청년들을 더 이상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 의견서는 청정넷에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해 작성한 뒤 전날인 21일 오후 11시부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 이날 오전 10시까지 연명을 받았다. 하룻밤새 317명이 의견서 제출에 동참했다.
청정넷 관계자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측 변호인이 대법원에 변론자료를 제출한다기에 이날 1차로 모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청년단체들은 지난 19일부터 29일까지 오후 12시30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대법원 정문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청년단체들은 이어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해 2차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정넷 제공](http://t1.daumcdn.net/news/201601/22/khan/20160122165735236itxn.jpg)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이것은 청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청년의 삶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률을 비롯한 모든 통계지표가 그것을 눈에 보이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숫자로도 포착되지 않는 구체적인 삶들은 눈에도 띄지 않게, 조용히 추락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우리가 세상에 뱉어내는 것은 고작 인터넷에 접속해 ‘헬조선’이나 ‘흙수저’라고 써내는 절규입니다.
인생의 여러 단계 중에서도 ‘청년’ 시기가 가지는 의미는 ‘출발’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청년이 되면서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교육을 마무리하는 시점부터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직장’이라고 부를 법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창업을 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년은 이렇게 다양한 삶의 진로를 앞에 두고 이제 막 무언가 시작해보려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청년이 ‘자기 일’을 가지면서 ‘사회’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당장 눈앞의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라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스펙을 쌓아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에 나설 것이냐 하는 딜레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구직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취업준비활동의 부담은 나날이 커져갑니다. 누군가는 현실에 실망하여 취업활동을 포기하고 사회와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이른바 ‘사회 밖 청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득 없는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든 빚을 지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주거비·교통비·식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용에 학원비·교재비·시험 응시료 등 구직비용까지 더하여 엄청난 지출을 감당해야 합니다. 공부할 시간을 쪼개 한 시간에 최저임금 6030원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액을 메우기도 부족합니다.
최선을 다해왔고 이력서에 쓰고 넘칠 스펙을 갖추었는데도 단지 내일을 계획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일자리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을 알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기 탓’뿐입니다.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이 잘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사회가 붕괴되었으면 좋겠다거나,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거나, ‘탈조선’만이 답이라는 분노 섞인 자조감이 청년들 사이에 만연해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 논란 속에 빠져드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정말 속이 상했습니다. 언론에 의해 ‘청년수당’으로 더 많이 알려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은 이런 청년 당사자들의 삶과 목소리로부터 탄생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필요와 요구에서 출발한 사업입니다.
서울시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청년들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를 스스로 구성하여 서울시의 청년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제안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이 쌓였습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 사업은 그 시간 동안 청년들의 숱한 노력들이 모여 서울시 집행부와 의회에 제안하게 된 정책입니다. 서울시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소개되고 있는 모범적인 ‘시민참여행정’의 시도가 낳은 결과물입니다.
중앙정부가 국가정책 수준에서 일자리를 양적으로 창출하고 질적으로 개선하는 중장기적 대책을 내놓는다면, 지역 수준에서 청년의 일상에 더 가깝게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무엇부터’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중앙정부의 ‘일자리 창출’ 중심 정책이 가진 공백과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시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 사업은 자기 일을 구하는 미취업 청년이 다양한 활동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서울시가 특정 기간 동안 활동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무기력한 자조 속에 ‘비활동상태’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청년들이 그 이름에 어울리는 ‘활동상태’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입니다. 청년은 여러 이유로 접어두었던 활동에 도전하고, 서울시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입니다. 그것은 서울시와 청년 사이에 새롭게 맺어지는 작은 ‘약속’입니다. 사회 밖으로 배제된 청년들과 우리 사회가 신뢰의 관계를 회복해보자는 제안입니다.
사회로‘이행’하는 단계에서 청년이 처한 곤궁함이 생애 전반의 위기로, 모든 세대의 위기로,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사회로 나서는 긴 시간을 홀로 버티고 있는 청년들을 더 이상 혼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청년의 현실을 지금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청년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는 ‘이행의 비용’을 누군가는 덜어내야 합니다. 청년의 현실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그들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고, 그들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사실은 너무 심하게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이러한 책임 앞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서울시의 사업설계에서 최장 6개월 동안 한 달에 50만원씩 지원되는 활동비용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일주일에 15시간 노동하는 대가입니다. 적어도 무언가 해보려는 청년들에게 단번에 많은 것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루에 3시간 정도는 자기 삶을 그려나갈 수 있는 시간을 되돌려줘야 합니다.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발을 힘껏 디딜 수 있는 작은 발판 정도는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울시 청년활동지원’ 사업이 청년의 삶에 가지는 의미는 그런 것입니다.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시의 작은 시도가 나쁜 논란과 정치적 공격에 휩싸여 시행되지 못한다면, 청년들이 느낄 실망을 누가 상상할 수나 있겠습니까? ‘서울시 청년활동지원’ 사업이 꼭 예정대로 추진되어서 청년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희망합니다. 새해에 어울리는 희망은 그런 것입니다.
부디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나온 데: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seoul/newsview?newsid=20160122163938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