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계엄령, 국내 넘어 해외 '벤치마킹' 한다면
김상우 기자 승인 2016.11.18 13:43
박근혜 계엄령 관심 폭발 … 해외 계엄령 사례 독재 목적 대부분
18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폭탄 발언을 하면서 '박근혜 계엄령'이 주요 포탈사이트 인기검색어 1위를 휩쓸고 있다.
계엄령은 국가의 치안과 안보를 목적으로 대통령이 발동할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지만 그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계엄령은 독재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할 만큼 악용됐다는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약 계엄령을 선포한다면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전시나 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계엄령 카드를 꺼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가 지난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100만여 명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지난 12일 민중총궐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100만여 명의 군중들이 한 곳에 집결한 것을 국가비상사태의 명분으로 삼기엔 국민적 설득은커녕 반발만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부터 언론통제와 유신 헌법 등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계엄령을 남용했던 사례가 있다. 권력 유지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계엄령 카드를 아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후퇴를 가져왔기에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다면 이에 따른 역사적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현대사의 비극적 결말을 만들어 낸 역사적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올해 1500여 쪽 3권 분량의 회고록을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신군부 최고 실세였기에 계엄군 발포 명령에 관여했을 것이라 주장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은 "대통령이 발포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고 관련자 진술도 일치한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계엄사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고 보안사령관에 불과했다"며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내용들도 회고록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의 발언을 빗대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 카드를 꺼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비꼬았다.
황상민 전 교수는 지난 4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나이가 11살 쯤 된다. 최순실을 만났을 때는 나이가 23~24살이었을 것"이라며 "최순실을 만났을 당시는 나이만 20대지 사실상 발달 장애 상태에서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과 비교하면 실제 정신 연령은 17~18세 정도"라며 "당시의 정신 연령에서 더 이상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근거 없는 얘기지만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비선조직이 북한에 일명 총질을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사건'을 빗대기도 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하면서 현 퇴진 시위를 엮어 국가비상사태로 진단, 계엄령을 선언할 수 있다는 소설 같은 주장도 나온다.
지난 7월 14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인터넷판 뉴스를 통해 '한국은 독재정권으로 회귀하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3년 반 동안 정치적 자유가 두드러지게 후퇴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독재적 성향이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포린폴리시는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경제성장과 함께 임의적 구금, 광범위한 고문, 처형, 계엄령 등 심각한 탄압으로 점철됐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북한의 위협을 마음속으로는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의 모든 베개와 침대 밑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찾아내는 묘한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진보 성향이면 종북으로 공격하는 일이 흔해졌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열기'(fever pitch) 수준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오늘날 한국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북한이 아니라 불평등과 일자리 부족, 삶의 질"이라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실패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에게는 진보진영과 공산주의자들만 있으면 족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해외에서 최근 계엄령이 발포된 국가는 터키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쿠데타에 가담한 이들을 모두 축출해버렸다. 특히 군부 다음으로 언론인들과 교육자들을 주 타깃으로 해 외신들은 이번 쿠데타가 장기 집권을 위한 자작극이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전 세계 주요 계엄령 사례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1804년 3월 4일 케슬힐 죄수 반란사건이 일어나자 계엄령을 선포했다. 캐나다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었던 1917년과 제2차 세계대전이었던 1944년에 전시조치법을 시행했으며 1988년 국가초비상사태법이 전시조치법을 대체했다.
지난 7월 터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이 새벽 이스탄불 탁심 광장을 점령하고 있는 모습. |
이집트는 1967년 제2차 중동전쟁 이래 지속적으로 계엄령이 시행해 계엄령이 해제된 기간은 1980년의 18개월이 전부일 정도다.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와 측근들의 부정축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퇴진 시위를 벌이면서 정부가 무너지자 계엄령도 자연스레 해제됐다.
인도는 1962년 중국과의 국경분쟁과 1965년,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하와이 주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일본은 1905년 히비야 방화 사건(포츠머스 조약 반대 폭동), 1923년 간토 대지진, 1936년 2·26 사건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만은 1947년 2.28 사태의 영향으로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1949년 5월 20일 '타이완 성 계엄령'(臺灣省戒嚴令)을 발포했으며, 1987년 7월 15일 장징궈 총통에 의해 해제될 때까지 무려 38년 동안이나 계엄령을 지속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계엄령 기간이 가장 길다. 일부 지역에 한정시킬 경우 대만 푸젠성의 진마 지구에서 시행된 계엄령은 1948년 12월 10일에 발포돼 무려 44년간 지속됐다.
중국은 1964년 총동원령에 대비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하이난 섬에 이르는 연안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1989년 3월 7일과 5월 19일, 티베트 독립운동과 톈안먼 사건에 따라 티베트 자치구 일부 지역과 베이징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계엄령은 1990년에 해제됐다. 2012년 1월에는 티베트 독립운동이 발생하자 티베트 자치구 일부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필리핀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집권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정치인을 탄합하는 동시에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1972년 9월 21일 계엄령을 선포해 1981년 1월에 계엄령을 해제했다.
말레이시아는 1969년 5·13 사건 후 사회 안정을 목적으로 선포됐고 1971년에 해제됐다. 이 기간 동안 의회 기능이 마비됐다.
나온 데: http://www.cbci.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