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 얼마 전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고 말해 화제가 됐던 영국 영화계의 거장 켄 로치는 사회 고발성 짙은 영화로 평단에 주목을 받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하층민들’을 통해 1991년 칸영화제 비평가상을 받은 바 있으며, ‘숨겨진 계략’이란 작품을 통해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 정부의 폭력적 대응방식을 폭로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작품들 중 ‘네비게이터’는 영국의 시대적 상황을 묘사한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철도 민영화 이후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삶의 변화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 한 철도 노동자가 켄 로치 감독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노동자들은 철도 민영화 이후 정리해고 및 임금삭감 등을 당했으며, 민간업체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게 된다. 게다가 노동자들 사이에 따뜻한 동지애는 사라졌으며 적자생존의 터널에서 각자 살기 위해 대립한다.
실제 영국은 1979년 대처가 집권한 이후 대대적인 국영기업 민영화가 이뤄졌다. 대처의 집권 시기 영국 보수당은 1982년 국영 화물회사를 시작으로 석유, 통신, 전력, 수도, 철강 등 국가기간 산업을 민간기업에 팔아넘겼다.
대처 이후에도 민영화 바람은 여전했다. 대처 후임이었던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는 1993년 ‘철도민영화법’을 제정한 뒤 철도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민영화를 실행에 옮겼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실행은 결국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케 했다. 글로벌정치경제 연구소 오건호 소장의 논문(‘영국 철도 민영화 왜 실패했을까’)에 따르면, 철도 민영화 이후 매년 철도사고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민영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열차 간의 신호 시설 설치를 소홀히 했으며, 그 결과 열차 충돌 사고와 전복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영국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뒤 철도 산업은 다시 국유화로 전환했다. 하지만 철도시설과 관리는 정부가 맡고 있지만 철도운송서비스산업은 여전히 민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영국의 철도요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은 까닭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영국의 민영화 실험은 값비싼 교훈만 지불한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철도 민영화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7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수서발 KTX를 포함해 신규 노선마다 코레일과 다른 별도의 철도 운영회사가 운영권을 놓고 다투게 하는 기본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와 코레일이 정책금융 등을 통해 51%의 지분을 확보한 뒤, 나머지 49% 지분은 민간자본에 넘기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권역별 철도운영회사를 지배하는 별도의 철도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선 당시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정책으로 포함시키는 등 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모습은 개혁 의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왔다. 따라서 자신이 내세운 공약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미 공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CBC뉴스 유수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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